ngo 지원자 자기소개서  

이번이 몇 번째 쯤 될까?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소개서를 써 본 경험 말이다. 내가 다닌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새 학년마다 앞뒤로 된 갱지 1장에 빈칸을 메워 제출하면 끝이었던 가정조사서가 곧 나에 대한 소개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연례행사는 나를 둘러싼 가정환경에 대한 자료 제출이었지, 엄밀히 말해 나 자신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 때까지 나는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속의 나, 지금은 불태워 버린 유년시절 일기에서 비춰지는 나, 자의 혹은 타의로 썼던 모든 글들에 녹아있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소개서’라는 제목에 들어맞는 글로 나를 표현해 본적이 없는 셈이다


자기소개서가 중고등학교 시절 숱하게 보아온 논술이나 독후감보다 더 어려운 장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해 a4 한 장을 꾸역꾸역 메워야 했던, 아마 5년 전 지금쯤일 것이다. 미대를 지원했던 한 친구가 자신의 장점을 ‘솔직함’이라고 적어 내려간 걸 보고, 나는 그 친구가 정말로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정작 자신의 장단점과 구구한 인생계획에 대해 밤늦도록 고민하면서. 그리고 2년 전, 나는 한 ngo에서 인턴을 하면서 새로운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 내 속에서는 쓰나미보다 강한 폭풍이 계속되고 있었고 마음은 그 바람에 찢겨진 종잇장처럼 너덜너덜해진 까닭에, 결국 나는 읽는 사람마다 짜디짠 맛을 느낄 만한 자기소개서를 써냈었다.

23년을 줄곧 이어온 땅에 자잘하게 박혀 있는 돌들은 생략한다면, 이 정도가 자기소개서를 써 본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이제 막 박히기 시작한 이 글과 한두 달 안에 뚜렷한 흔적을 갖게 될 제법 중요한 자기소개서가 기다리고 있다

내 얘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자기소개서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길게 해 본 이유는, 여전히 나를 표현하는 작업에 익숙하지 못한 자의 또 한 번의 은근한 회피일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 내가 자기소개서를 낯설어 하는 이유가 꼭 나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떼도 슬며시 부려보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자기소개서 자체가 싫은 것보다, 거기에 무슨 내용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가 지금도 조금 막막하기 때문이다


늦되다면 너무 늦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흔히들 자기소개서에 담는 내용인 ‘자기’에 대한 고민을 대학에 와서야 진지하게 시작하였다. 때 아닌 긴 방황을 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고, 그러한 시간동안 한때 꽤 심각하게 자폐적이고 우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것이 된 지식과 경험들은 대학 1학년 초기에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백지장 같은 공허함을 조금씩 색색의 빛깔들로 달래주었고, 이제까지의 삶을 깨끗이 쓸어내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쩨쩨한 인생결벽증의 충동을 서서히 가라앉혀 주었다.

그동안 자신이 정한 삶을 이끌어나가며 삶의 순간순간에 온전히 스며드는 사람들의 행복함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나만의 뚜렷한 색깔을 이 자기소개서에 풀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품게 된 문장 하나가 일단 ‘꿈은 일상을 이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지은 건지 어디서 베낀 건지 그 기원은 기억나지 않는데, 나처럼 몸도 마음도 잘 무너지는 사람한테는 적잖이 힘이 된다

누군가 “그래서, 일상을 이길 만한 꿈은 뭔데?”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스펀지’ 프로그램처럼 그냥 “‘네모’다”라고만 말해 두고 싶다. 그저 내가 부여잡고 있는 단 한 줄기 소신이 있다면, 마치 경복궁처럼 큰 공간에 기와 하나 올리고 단청에 붓질 한번 하듯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빠릿빠릿 움직여서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두루뭉술하고도 소소한 생각 정도니까

여기까지 다 쓰고 드는 데자뷰.나는 이번에도 불친절하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쓴 건 아닌지.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