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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 최고의 과학자이천

서식번호
TZ-SHR-658210
등록일자
2016.08.30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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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국가경영  (세종시대의 과학자 공학자)  세종 시대 최고의 과학자, 이천  

이천은 조선 시대 세종 때의 과학자이다. 충청도병마도절제사였던 이천은 공조참판이란 과학 기술 행정관서의 차관으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과학 기술자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행정 능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공조참판으로서 이천이 해낸 첫 번째 큰 사업은 청동 활자 인쇄술의 혁신이었다. 1420년 겨울부터 시작해서 1421년 5월까지 완성한 새로운 청동 활자인 경자자와 그 인쇄기의 제작이었다

그는 금속활자와 활판 인쇄기의 표준화를 추진하여 인쇄능률을 2배 이상으로 향상시킨 것이다.

두 번째로 도량형의 표준화 사업에 착수하였다. [세종실록] 4년 6월 20일 기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임금이 공청이나 사가에서 사용하는 저울이 정확하지 아니하므로, 공조참판 이천에게 명하여 개조하게 하다. 이 날에 이르러 1,500개를 만들어 올렸는데

자못 정확하게 되었으므로 전국에 반포하고, 또 더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유로이사들이게 하다. ’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자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발달도 있지만, 지도자의 관심과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도량형의 표준화 사업은 그 후 자와 되, 말의 정비로 이어져 조선 왕조의 도량형 제도 확립의 기초가 되었다. 이것은 정치, 경제를 비롯한 왕권의 확립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1424년(세종6년)에 이천은 천추사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4개월 동안의 중국 여행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1425년(세종7년) 12월에 이천은 병조참판으로 임명되고, 다음 해 9월에는 중군총제로, 그리고 1431년(세종13년) 12월에는 우군도총제로 승진하였다. 이렇게 이천은 군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각종 병기의 개량과 조선기술의 향상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요즘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군사 강대국은 바로 과학 선진국’이란 개념을, 세종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과학자로서의 이천의 활동은 1432년(세종14년) 3월에 그가 지중추원사에 임명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천문 기기를 만드는 대 역사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이사업은 조선 왕조의 천문학 발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국가적 과제였기에 이천에게 주어진 사명은 막중한 것이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임금이 경연에 나아가 역상의 이치를 토론하고, 예문각 제학 정인지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멀리 해외에 있어서 모든 것을 하나같이 중국의 제도를 따라 시행하는데. 유독 천문을 관찰하는 기계만 빠졌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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