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의 선택과 그 인식, 그리고 발전에 대하여   
1.시인들의 언어 선택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사람의 특별한 개인이자,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일원으로 존재한다. 그 공동체는 정치공동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 이념공동체, 종교공동체, 혈연공동체, 정서공동체 등등 수많은 양태를 띨 수 있거니와, 그 가운데는 언어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는 공동체도 있다

한 인간은 이와 같은 언어공동체에 속함으로써 기능적, 도구적 편리성을 기함은 물론, 정서적, 심리적인 차원, 더 나아가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같은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친연성과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모국어’에 관한 논의는 여기에서부터 가능해진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담아 사용하는 모국어라는 말은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것은,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다소 운명적이나 실은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공동체이자, 하나의 제도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물론 국가 공동체가 아닌 다른 어떤 공동체라 하더라도 사실은 자연발생적인 부분과 인위적인 부분을, 다소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함께 지닌다.

20세기는 물론 21세기가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까지도 전 세계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큰 제도는 국가이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국가주의이다. 언어의 일차적 의미가 국어인 것은 이러한 사실의 반영이다

그 국어를 모국어라는 감성적이며 혈연적이고 생물학적인 용어로 바꾸어 부른다 할지라도 이와 관련된 사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주의 시스템 속의 한 인간은 자유로운 한 인간이기 이전에 국가의 언어를 배우고 사랑해야 할 국민이며, 국어는 가치중립적인 언어가 아니라 국가주의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국가주의 시스템 안에서 사유하고 공부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는 그것의 타당성과 개인의 선택이나 기호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 이곳에서 작동하는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한 국가 공동체의 언어를 잘 가꾸고 보살피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그래서 나오게 된다


한 사람의 시인 역시 그가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그의 의지나 언어의 자연발생적인 생성 및 유통 과정과 관계없이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자연스럽게 그의 모국어가 된다

비록 각 지방의 차이에 따른 방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국어의 대표적 존재인 표준국어의 습득과 수련은 시인의 삶에 있어서도 필수적 과정이 된다.
시인의 언어선택 문제는 이런 사실을 고려한 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우리의 시인들이 한국어를 시어로 선택하여 시를 쓰고 있다는 것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 그리고 그렇게 해왔다는 관습성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재외한인들, 그 가운데서도 한인 1세대나 1.5세대들이 주로 모어인 한국어를 시어로 선택하여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현실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이것은 특수한 경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땅의 시인들이 모어로서의 한국어를 시어로 선택하여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당연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내용과 관련하여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또한 각 지역의 방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인들이 방언보다는 표준어를 선택하여 시창작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국가 및 국가주의의 문제에 비추어 각별히 심각하게 음미해 보아야 할 점이다.
2.시인들의 언어 인식

일단 어떤 시인이 특정의 언어를 선택하여 시를 썼다고 하자. 그 선택은 자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한 결과로 이루어진 선택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