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가에서  

나는 숲을 헤매고 있었다. 얼마동안의 시간을 헤매고 다녔던 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무렵 저 멀리서 은은한 불빛이 내 눈을 자극했다

나는 그 불빛을 쫓아 마침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이름 모를 나무 둥치에 앉아 모닥불을 지피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 연기가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을 부드럽게 감싸며 하늘로 작별을 고했다. 노인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앉으라는 표시로 턱을 앞으로 쭉 뺏다

놀랍게도 나는 이런 이질적인 분위기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노인과 마주할 수 있게 나무 둥치의 반대편에 있던 바위위에 살며시 걸터앉았다. 그러자 노인은 차분하게 입을 떼었다


노인은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다만 기억이 머릿속에 새겨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연스레 삶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인생은 방랑으로 가득했으나 대개의 것들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호기심이 많은 기질도 있으나 천성이 선하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총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때론 자신이 믿던 친구에게 배신도 당하고 지옥불의 악마와 삶의 종말을 함께 할 뻔도 했으나 인생의 굴곡만큼 감정이 풍부해서 좋았노라 껄껄 웃어댔다

그러더니 돌연 자신이 살던 어떤 나라의 북쪽에는 작은 시골마을이 있는데 그곳에는 용감한 순례자들이 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순례자는 집을 나서 길을 걸었다. 그것은 천국에로의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었고 지옥으로의 반기지 않는 길이었다

그의 발가락이 작은 만큼 몸집은 왜소했고 따라서 언덕너머를 보기위해선 그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 언덕을 넘어서야만 했다. 길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고 곳곳에선 마귀들이 그의 귀에 유혹을 속삭였다

수많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그는 따뜻했던 날의 안락함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미미하게 감지되는 동포들의 분투를 떠올렸다. 그에겐 우정이란 이름의 신앙이 있었고 친구란 이름의 신이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그의 친구였다.

노인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나는 노인의 행색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의 모습은 굉장히 정상적이지만 그의 지난날의 행보는 기이한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고민을 했다. 과연 그를 인간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