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살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피터 스완슨>  

‘두 잔은 너무 많고 세 잔은 부족한’ 마티니 같은 매력을 가진 이 책은 다음 내용이 무엇일지 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피터 스완슨은 주인공 릴리를 중심으로 그녀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책을 읽는 동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릴리와 테드라는 남자는 우연히 보스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 대화를 나누게 된다. 비행기가 연착되고, 대화를 나누다 테드는 릴리에게 아내 미란다가 시공업자 브래드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장난삼아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 테드에게 릴리는 진지하게 그가 아내를 죽이는 것을 돕겠다고 설득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강간하려 기회를 엿보던 쳇이라는 화가를 유인해 우물에 빠져 죽이고, 자신 몰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남자친구 에릭을 죽인 릴리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릴리 못지않게 계산적이었던 미란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릴리는 테드, 미란다, 브래드의 죽음과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릴리와 테드가 미란다를 죽이려는 계획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이는 침착하고도 계획적인, 그리고 자신의 행동들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서운 살인자 릴리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어차피 사람은 죽으니까, 조금 일찍 죽이면 어떻냐는 것이다

릴리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한다. 마치 침착하고 조용하게 풀숲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맹수를 떠오르게 한다

맹수로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맹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 것이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릴리도 브래드를 죽인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자신이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릴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대충 파악하고 난 뒤 그제야 책 제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책 표지에 반짝이는 보랏빛 글씨로 쓰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연분홍빛 배경 속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

금주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굳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예쁜 표지 디자인인 것도 있지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자극적인 책 제목이 가장 큰 이유였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전적으로 릴리의 관점으로 지어졌다

릴리는 스스로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자기가 저지른 일을 공유할 상대가 없다는 것에 외로움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아닌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보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원제는 ‘the kind worth killing’인데,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deserve to die(~받아 마땅한)’가 아니라 ‘worth killing(~할 가치가 있는)’은 살인자로서의 정체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한다

이런 미묘한 단어의 선택만으로 작가가 모든 걸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제목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