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허황된 낭만
아직은 순진해서 일까. 별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작품에 난 한숨을 내쉬며 괜히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완벽한 남자를 꿈꾸던 허영심 많은 여자의 이 불쌍한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여운을 주며 정이현씨의 글에 매혹되게 만들었다.
작가는 현실 속 소재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에게 메말라버린 현대의 싸구려 사랑을 보여 드라마나 다른 연애소설보다 더욱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 모두가 원하는 낭만적 사랑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꼬집으려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리
그녀의 이중성은 같은 여자로서 어이가 없을 뿐이다. 상대를 봐가며 그때마다의 컨셉은 기본이고 상대의 능력이라든지 재력 등을 고려해 계산적인 연애를 하는 것은 고수중의 고수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처음에 그녀의 태도를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순응해 사랑을 획득하려는 것을 역으로 비판하는 전략적 행위로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승부수를 띄웠던 사람과의 첫경험이 실패로 끝나고 불안감에 스스로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암시하는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에서 결국 그녀도 별 수 없이 남성 이데올로기에 순응해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여자란 걸 알았다
연애를 해 본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상대에게 맞춰주면서라도 잘 보여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똑같은 심리니까.
강한 여성, 부자인 친구 혜미와는 다른 자신이기에 그녀는 강한 여성을 꿈꾼다. 남자를 능숙하게 다루고 순결을 철저히 사수할 수 있는 능력, 완벽한 모습과 후에 성공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그게 그녀의 강한 여성상이라면 나의 강한 여성상은 다른 것이라 하겠다. 물론 완벽한 모습과 성공이야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만이 강한 여성의 조건에 들어 갈 순 없다
강한 여성은 완벽한 인간, 또는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강한 여성이지 그렇다고 강한 사람이 완벽하단 소린 아니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여성. 그것이 강한 여성이 아닐까? 용감한 용사 곁에 훌륭한 조언자나 동료가 있듯이 기대거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단 것도 필수 조건이고 말이다
민망한 글 속에서도 쉽게 눈을 떼지 못한 건 이게 레포트를 위해 읽어야 하는 글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이현씨의 톡톡 튀는 글 솜씨의 매력 때문이기도 했다.자칫 끈적하고 지루하게 나갈 수 있을 내용을 십계명과 각주를 달아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재량 덕이었다.
소설속의 유리가 과연 발칙한 악녀라고 불릴 인물인지는 정의 내리기 어렵다. 객관적으로 봐서 진심(남자는 무조건 늑대라고 들어온 나로선 과연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으로 좋아해주는 남자들을 가지고 논 것으론 치를 떨만한 악녀라고 하겠지만 결국 그녀도 허황된 낭만 속에서 상처 입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선 같은 여자로서 측은함을 보내야 옳겠지만 난 그녀를 악녀로 정의 내리고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사랑이 그렇게 값싸고 우스워 졌다고 해도 아직은 그렇게까지 사랑이 타락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나로선 그런 행위는 상상도 하고싶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잔 자고로 한 남자만 바라보며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조선시대적 여성상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