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아서밀러의 시련  
예술장르를 불문하고 입문자들은 분명 ‘고전’부터 접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예술이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분명 시대를 초월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그런 작품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공감대가 작품 속에 내재되어있다는 것일 테니까요.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학문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우리 학생들도 역시 ‘고전’에 대한 탐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시간에 다뤘던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의 작품이 예술의 전당에 올려진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을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안 보면 후회한다!’ 싶었거든요.결과부터 말하자면 별 10개를 줘도 모자랄 작품이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최고의 텍스트와 최고의 연출가, 최고의 배우들이 만든 환상의 하모니라고나 할까요.제 우둔한 작문실력으로는 이정도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일단 제가 이 작품에 대해 구미를 당기게 했던 요소 중 하나는, 배우 ‘정동환’이었습니다.
tv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해 매우 익숙한 그를 서주희라는 배우와 함께 출연했던 <레이디 맥베드>라는 작품에서 연극배우로 처음 본 후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배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직접 극장에서 본 것이 아니라 영상자료로 후에 보게 되었지만,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호흡과 간드러지는 발성은 굉장히 인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정동환 씨가 이 작품에 출연한다고 해서 굉장한 관심이 생겼고 고등학교 때부터 제집 드나들 듯 다녔던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관(리싸이틀홀,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이외에는 가본 곳이 없었는데 토월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새로운 극장에 대한 기대심도 매우 컸습니다.
여기에 <명성황후>를 제작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윤호진님이 오랜만에 정극 지휘봉을 잡는다기에 이건 연극 보기 전부터 굉장한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고전’이라기에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할 것으로 생각하고 큰 각오를 하고 극장엘 갔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던 근3시간 동안 저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었고 여기서 엄청난 희곡 텍스트의 힘을 느꼈습니다.
나름 싼 좌석을 고르느라 a석을 예매했었는데 자리가 터무니없이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죄송하지만 x층 정 가운데의 ‘남아도는’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관람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극장에서 연극을 보았던 적도 처음이거니와) 연극을 x층에서 관람했던 적은 처음인데 감상하는 내내 참 잘 택했다 싶었습니다.
무대의 부분 부분을 보며 시선을 계속 옮겨 다녀야 하는 1층의 좌석과는 달리 무대가 한 눈에 다 들어오고 무엇보다 요즘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쉼’없는 배우들의 동작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꽤 자주, 대사가 없는 배우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았습니다.
  
작년에 잠깐 교회 형에게 연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하는 동작 중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시고는 대사가 있거나 그 순간 주목을 받는 배우들 이외에도 주변 사람들 모두 각자가 해야 할 ‘이유’있는 동작들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가히 출연 배우들은 모두가 자신의 상황과 캐릭터에 맞는 동작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고, 그것들이 나중에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말 ‘대가’들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주저 없이 하게 해준 대목들이었습니다.
  
작품 내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선 정의와 진리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소위 ‘마녀사냥’이라고 불리는 개념들이 과연 ‘정의’에 의한 잣대로 판단되는 것인가, 아니면 옳지 않는 것일지라도 다수의 동의에 의한 것이라면 ‘정의로운’ 잣대가 되어 그것들을 판단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가능케 해줍니다.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해 ‘생성된’ 정의에 따라 모든 것의 가치와 시비가 결정된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정의’가 될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 또한 가능케 합니다

또한, 그 ‘생성된’ 정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잊지 않습니다.   
결국 정의란 것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리지만, 양심을 지닌 한 사람으로써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정의와 진리를 지켜내려는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낸 존 프락터라는 캐릭터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