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의 역설> 글짓기
얼마 전, 우리 가족은 아빠의 동료들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오랜만에 쐬는 바깥공기
는 상쾌했고 바닷가에서 하는 캠핑은 오랫동안 생각날 만큼 좋았다.그렇지만 지금의
내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식사시간이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자 엄마들은 뛰어다니던 어린 아이들을 얌전히 식탁 앞에 앉
히셨다.우리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와 아저씨들은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하셨다.그날만큼은, 상추를 씻고 고기를 굽는 일, 또 밥을 푸고 국을 뜨는 것까지 모두 아빠와
아저씨들의 임무였다.
우리 아빠야 집에서도 늘 볼 수 있는 모습이라 자연스러웠지만, 무뚝뚝한 아저씨, 물이
라고는 묻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아저씨, 직장 일에만 묻혀 사는 아저씨들이 국자를
들고 고기를 굽고 밥을 푸는 모습은 왠지 낯설었다.비슷한 마음이 들었는지 어린 윤규
가 큰 소리로 물었다.“아빠, 오늘은 왜 아빠가 밥을 하지?”
“응, 원래 밖에 나오면 남자들이 음식을 하는 거야.”
아저씨의 대답에 윤규가 다시 물었다.“왜?” “글쎄.원래 그런 거래 �.”
아저씨의 대답에 모두 잠시 갸우뚱하는 순간이 지나고, 다시 이유야 중요치 않다는
듯 저녁 준비는 진행되었다.엄마들과 아이들이 맛있는 저녁을 먹는 동안 아빠들은 열
심히 고기를 굽고 날랐다.식사의 끝에는 아저씨들의 수고를 칭찬하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졌다.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참 낯설어 보인다고, 집에서
는 바쁘다며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한다고, 매일 캠핑 나와야겠다고, 이모들은 모처럼의
여유가 좋은지 환하게 웃으면서 아이들의 식사를 챙겼다.
그 자리는 모두 마땅히 즐겁고 행복한 식사였지만 나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남자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여자들이 아이들을 챙기며 밥을 먹는 캠핑장의 모습은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당연해졌다.하지만 한편으로, 그 장면은 남자는 바깥일에 더 비중을
두고 여자는 가사에 더 신경 써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뒤집어 놓은 것 같아 보였다.여기서는 이래야 하고 누구는 이래야 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역할 분담은 아직 양성평
등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색한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성평등의 개념이 가장 가깝게 실현되는 것은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한다.‘슈퍼대디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요즘 아빠들의 분위기는 많이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의 가사 분담은 여자들의 어깨에 좀 더 무겁게 얹혀 있다.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잔존하면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하게 활발해지는 추세
에서, 이런 부담은 어쩌면 불가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런 상황을 또다시 급하게
개선해 보겠다는 노력이‘캠핑장에서는 남자가 밥을 해야 된다.원래 그렇다’라는 억지
역설을 만든 건 아닐까?
양성평등의 개념은 가사 일이나 직장에서의 일을, 사회의 일을 남녀가 기계적으로
50:50으로 나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또 집안에서의 일을, 캠핑장에서의 일을, 시댁과 처가에서의 일을 산술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남성과 여성이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