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도 양성평등의 씨앗이 싹텄다<글짓기>
“꼭 아들을 낳아야 헐것인디? 야야, 나는 아들만 넷을 낳았다.”
15년 전 할머니께서는 산통을 겪고 있는 엄마 옆에서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축하합니다.3.8kg 딸입니다.
” “축하는 무슨 축하∼”
나는 할머니께서 그렇게 바라시던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보시자마자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래서 엄마는 산후 조리도 마음 편하게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 출생의 비밀이 그랬다고 엄마께서 웃으시며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난 그 소리를 듣는데 웃기지만은 않았다
그런 줄 몰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서는 나한테 둘도 없이 다정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였다고 하니 더욱 속상했다.
“니가 터를 잘 팔아서 할미가 너를 더 이뻐 하는 거여.”
할머니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도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중학생이 되고 보니 정말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내 남동생은 맨 날 시험은 올백을 맞고,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도 상을 받고, 시 영재에도 척 붙어서 할머니께서는 신동이니, 가문의 영광이니 하시며 친척들이 오시면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나를 예뻐하시는 게 남동생 때문이라니 그럼, 나는 남동생에게 감사해야하는 걸까? 가뜩이나 자기 주제를 모르고 까불어 대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많은 녀석인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할머니께서 갑자기 오셨다.그때 엄마는 모임 때문에 밖에 나가셨고, 아빠께서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암만 그래도, 내가 너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키웠는디, 너는 우리 집 장남이여.나 이런 꼴 더는 못 본다.”
“어머니, 지금 세상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어딨어요? 평등하게 하 는 거지.”
“수빈아, 니 아빠 앞으로 설거지 못하게 해라.”
썰렁한 분위기에 나는 고개만 느리게 두 번 끄덕였다. 나는 남존여비 사상에 푹 빠진 할머니께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심통이 났다
그런 후 일주일이 지났어도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께 편지를 썼다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