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외국문학 독후감  

책을 핥듯이 읽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이상하게도 대학에 온 이후로 책 읽는 속도가 떨어지더니, 책을 읽는 행위는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압력을 주는 한가지가 되었더랬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그 압력의 원인이다. 그 때문에 때때로 한번 넘긴 책장을 다시 넘겨서 앞의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 버릇이 생겼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대할 때조차도 꼼꼼하게 읽으려는 지나친 마음이 책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랜만에 나의 답답한 책 읽는 버릇을 불식시키는 책을 만났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도저히 앞으로의 진행이 궁금해서, 아니 현재 읽고 있는 문장들에 매료되어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거나 앞장을 다시 넘겨본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독일 소설이라고는 헤세의 <데미안>과 카프카의 <변신> 밖에 읽어보지 않았고, 그나마도 상당히 지루해하며-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읽었던 기억을 가진 나에게 쥐스킨트는 독일, 독일 소설에 대한 선입관을 깨어주었다.

<향수>에서 무엇보다 가장 빛나는 점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일 것이다. <초록색 지붕집의 앤>의 빨강머리 소녀 앤 셜리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상상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상상력이 없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쥐스킨트는 어디에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상상력으로 그 자신은 냄새를 가지지 않지만,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냄새를 잘 맡고 분석해내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인물을 만들고 그의 길지 않은, 그러나 누구보다도 기이한 일생을 그려내었다.

그르누이는 가장 악취가 심한 도시인 파리의, 게다가 지독한 비린내로 둘러싸인 생선좌판 아래에서 태어나 그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지만 생에 대한 스스로의 대단한 집착-마치 진드기와 같은-으로 죽음의 직전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생의 기회를 얻는다. 그 이후로도 그르누이는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맞지만 그의 질긴 생명력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르누이는 타고난 뛰어난 후각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들의 몸에서 채취한 향기들로 이루어진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든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25명의 소녀들을 살해해야 했지만 그것은 그르누이에게 전혀 문제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도덕이나 다른 가치들보다도, 심지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조차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려는 그의 목표 앞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쥐스킨트가 잡아낸 냄새라는 소재는 인간이 가진 다섯 개의 감각 중의 하나이다. 그가 설정한 배경인 악취가 지독한 인간세계, 특히 그 중에서도 파리라는 도시는 단지 그 냄새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얼마나 혐오스런 것인가,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까뮈의 <페스트>에서 썩은 하수구의 악취가 그 도시의 깊은 곳이 썩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과 비슷하다. 부패한 도시는 결국 페스트라는 재앙을 맞아서 시련을 당하고 정화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소녀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존재들이며, 어린 아기에게서는 좋은 냄새, 캬라멜 같은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온통 악취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르누이의 코를 사로잡는 그 향기는 냄새로 세상을 인식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구원에 다름 아니며, 이 세상의 어떤 악취보다도 인간의 냄새를 가장 혐오해온 그르누이로서는 아름다운 그 향기를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르누이가 가진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다른 인간들이 가지는 예술에 대한 열망과 다르지 않다. 최초의 살인 대상이었던 소녀로부터 처음 알게된, 아름답고 순결한 소녀들이 지닌 향기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추출해내어 병 속에 보관하려는 그르누이의 열망은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못한 것을 그 상태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열망, 또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히 남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힘으로 많은 예술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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