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을 불심으로 승화시키다 위덕왕  

백제의 숨결은 옛 도읍지 부여에 오면 따사롭게 느낄 수 있다. 부여 시가지 한쪽에 자리한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인들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유물들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부여 박물관 전시실은 선사실, 역사실, 불교 미술실, 그리고 특별 전시실로 나뉘어 있고 이중에 역사실과 특별전시실은 백제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불교 미술실에 들어가 보면 백제 미소의 상징인 서산마애삼존불과 더불어 백제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물인 국보 287호의 백제금동대향로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옆에 화강암으로 된 돌로 만든 유물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돌을 자세히 보면 ‘창왕명석조사리감’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데 얼핏보면 위면이 둥근 직사각형으로 빨간 우체통이 아닌 하얀 우체통처럼 생겼다. 아울러 국보 288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도에 능산리 절터의 목탑지 심초석 부위에서 출토된 것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백제금동대향로와 함께 출토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리의 공양은 탑신부나 심초석 등에 넣으며, 심초석보다는 탑 속에서 발견된 장엄구가 대부분이다. 심초석에 넣는 경우에는 그 위면이나 옆면에 사리공을 뚫어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사리감은 심초석 위에 따로 사리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은 특징으로, 백제에서는 이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사리감에는 20여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백제 금석문 자료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사리감은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조사 당시 감실 내부는 비어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사리감과 어울려 있던 심초석에 박힌 나무기둥에 도끼자국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멸망할 무렵 이미 도굴되고,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긴 모양이나 그에 얽힌 사연이 범상치 않을 듯하다.

이사리감은 백제 왕릉이 밀집되어 있는 능산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다. 절의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어 편의상 ‘능사’ 혹은 ‘능산리절터’ 라고 부른다

아마도 백제 멸망 무렵까지 이 절은 왕릉 곁에 있으면서 죽은 왕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원찰(願刹)로 있었을 터인데, 이제 백제의 멸망과 함께 폐허로 변하고 그 흔적만 남은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창왕은 누구일까


백제는 31명의 왕들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백제는 서울과 공주 그리고 부여의 세 지역에 도읍하였고, 서울에서는 온조왕에서 개로왕까지 20명의 왕이, 공주에서는 문주왕에서 성왕까지 5명의 왕이, 그리고 성왕이 부여로 천도한 다음 의자왕까지 6명의 왕이 각각 재위하였다

그런데 이들 백제왕들의 계보표에는 창왕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의 위덕왕 관련 기록에 보면 “위덕왕은 이름이 창(昌)이니 성왕의 맏아들이다

성왕이 재위 32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라고 되어 있어 그가 위덕왕이 곧 창왕임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는 국왕이사망한 후에 부여되는 시호와는 달리, 생존시에는 왕의 이름이 공식 호칭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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