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복수노조의 전망에 대해 풀어쓰며, 노사관계의 큰 그림인 새의 전망보다 외부 전문가는 벌레의 시각으로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작시기 : 2012년 3월

본문내용

김영택| 노무법인남산 대표 공인노무사복수노조의 전망에
대해 풀어쓰며, 노사관계의 큰 그림인 새의 전망보다 외부 전문가는 벌레의 시각으로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겨우 시간을 맞춰 기차에 올랐다. 여유를 두고 예매한 차편이었지만 마지막 미팅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서였다. 놀라운 통찰이었다. 간부라고 하기도 뭣한 막내급 관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장 권력의 이면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고 분석은 예리했다. 내가 반론을 제기할 때마다 씩 웃으며 ‘제가 현장을 제일 오래 봤어요’라고 했다. 회사가 가지고 있던 ‘큰 그림’이 땅에서는 임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복수노조 두 번째 강의는 ‘전망’에 관한 것이다. 지난 시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바른 것을 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방향만큼 ‘높이’도 고려해야 한다.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상황을 내려다 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의 시각으로 큰 줄기와 가닥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급변하다 보면‘일단 상황을 보면서 고민하자’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정이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전략도 나오고 실행도 촘촘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황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실행의 기준이 정해지는 것이다. 분명 상황을 보면서 ‘고민하자’고 해놓고 고민 없는 실행만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장에서의 반응은 과도하게 오버하다가 완전히 위축되는 패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그 의미도 내용도 모호한 ‘회사는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단기적 반응만 하게 되고 더 이상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는 일은 없게 된다. 대응이 아닌 ‘반응’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상황 초기 정렬(alignment)도 문제가 된다. 가령 그룹의 방침이 계열사의 대응과 차이를 보인다거나 각 실행 주체들의 개인적 특성이나 철학에서 오는 행동의 차이가 그런 것이다. 초기에 마무리되어야 할 혼란이 수 개월간 지속되거나 심지어 상황이 마무리되는 국면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새의 전망은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느냐’는 ‘우리가 몇 수 앞을 전망하느냐’에서 나온다.그러나 전망이 ‘큰 그림’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내가 기차 시간에 늦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상황은 이렇다. 그 회사는 방향과 전망을 가지고 전략을 수립했다. 옳은 일이었다. 그리고 상당한 기간 효과 역시 발휘했다. 모든 과정이 잘 짜여진 그림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고 향후 전망 역시 밝았다. 그런 몇 달이 흐르고 의사결정권자는 약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 더 이상 우리의 그림은 작동하지 않는가? 나는 우선 현장을 들여다 보았다. 바닥으로 내려가 벌레의 시각으로 현장을 점검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회사의 큰 그림(몇 억의 컨설팅 결과)은 90도 짜리 보온병이라는 것이었다. 물이 끓지 않았다. 곧 끓어 오를 것처럼 보였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 큰 그림이 현장과는 ‘약간’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큰 차이도 없다. 미세한 한 사람에 대한 평가, 사소한 현장 권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그럴 듯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새의 전망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벌레의 시각도 강조한다. 몇 수 앞을 내다 보기도 해야 겠지만 상대가 놓은 돌에 따라 그 수도 수시로 변해야 하고, 거기에 맞춰 내가 놓은 돌의 위치도 달라져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팀 하포드는 그래서 새의 시각보다 벌레의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새와 벌레의 대비는 그의 책 ‘어댑트(Adapt)’에서 가져왔다). 이라크 전쟁에서 럼스팰드가 실패한 이유를 그는 ‘방대한 정보가 수뇌부로 올라오고 수뇌부의 명령이 반론과 수정 없이 순식간에 하달되는 완벽한 시스템’에서 찾았다. 좀 더 나은 전과(戰果)는 그가 물러난 후 현지와 소통하면서 현장 상황에 맞게 교범과 작전이 수시로 바뀌면서부터였다. 노사관계의 큰 그림이 없는 것은 분명 문제다. 동시에 큰 그림만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새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외부 전문가는 벌레의 시각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보온병이다. 끓지 않는다. 현장을 들여다 보자. 그리고 지워질 운명의 큰 그림을 그리자. 두 회에 걸쳐 변죽만 울렸다. 이제 다음 호에서는 어떻게 전략을 잡아 나갈 것인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하 생략)

참고문헌

없음